어느 날, 뜯지도 않고 쌓아두던 고지서 하나를 열었습니다.
숫자를 보고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창밖은 여전했고, 시간은 흘렀고, 저는 멍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신청만 했으면 돌아왔을 돈이 있었다는 걸. 조금만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내지 않아도 됐던 것들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내가 먼저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걸.
1년 전, 저는 성인 ADHD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두 번만 보면 외워졌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열 번을 읽어도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한두 번이면 이해했던 것들이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잊고, 잊다가 또 처음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반복됐습니다.
버텨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버티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일이 됐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병원을 가고, 검사를 받고, 더 큰 병원으로 옮겨 또 검사를 받았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무너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데 손이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배워도 잊으니까, 기록해둡니다. 찾아봐도 흘리니까, 정리해둡니다. 알았다 싶으면 또 놓치니까, 붙잡아 둡니다.
쓰는 것만이 제가 무언가를 오래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고지서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알았더라면 달라졌을 것들을 아직 모르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 사람들에게 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쓰고, 또 씁니다.